팔세토 창법으로 대중에 강력하게 각인된 뮤지션
한시대 풍미한 중견 가수에서 연기자로 변신 성공
아들과 함께 스탠다드 소울 음악 만들어 보고 싶어
사회적 이슈 담은 음악들, 오해·왜곡 있어 아쉬워
가치 있게 무대에 서고 싶다는 갈망으로 이뤄내

조관우 ⓒ뉴시스
조관우 ⓒ뉴시스

예부터 알앤비(R&B), 소울(Soul) 음악에는 알 그린(Al Green), 마빈 게이(Marvin Gaye), 필립 베일리(Philip Bailey) 등 팔세토(Falsetto) 창법의 위대한 보컬리스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힘있는 가성으로 섬세하게 음계를 조율하는 팔세토는 소울 특유의 정서를 증폭해 많은 이의 호응을 얻었으며, 지금은 계승의 차원을 넘어 장르적,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두루 활용되고 있는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국내 사례로는 조관우가 있다. ‘90년대 중반, 앨범 『My First Story』(1994)로 본격 음악 시장에 등장한 그는 팔세토의 「늪」으로 전국을 뒤흔들었다. 당시 알앤비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생소했던 때였으니 창법은 더욱 생경했을 게 당연했다. 게다가 「늪」은 한 장르로 국한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음악이다. 유례없던 창법에 관한 이야기나, 동시대 정서로 쉽게 담을 수 없었던 ‘유부녀를 짝사랑하는’ 내용의 가사 논란이 주된 화두로 오르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리메이크 모음집으로 구성된 두 번째 앨범 『Memory』(1995)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가수 조관우를 대중에게 제대로 각인한 음반이다. 비록 높은 성과를 올리긴 했으나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견인하며 명확한 호불호를 초래했던 데뷔 앨범과 달리, 『Memory』는 신곡 「겨울이야기」 외 「꽃밭에서」를 포함한 리메이크곡 다수가 사랑받으며 대중의 반응을 긍정의 물결로 밀물처럼 몰아 포갰다.

이후로 지속해서 앨범을 발표하고 MBC 예능 프로그램《나는 가수다》(2011, 이하 나가수) 출연 등을 통해 자연스레 대중에게 스며들어 지금은 묵직한 중견가수로 정착한 그가 언제부터 연기 활동을 병행한다는 소식을 간간이 전한다. 게다가 ‘연기자’라는 명함을 내밀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커리어를 쌓고 있다. 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2011)를 시작으로 영화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2014, 이하 부제 생략), 《그것만이 내 세상》(2017)에 출연해 미처 그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로 대중을 놀라게 했는가 하면, 최근 tvN드라마《어사와 조이》(2021)에서 권태로움을 한껏 표출하는 전무후무한 왕으로 출연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관록의 가수에서 그치지 않고 연기 활동을 병행하며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조관우와 지난 14일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 인터뷰에서는 곧 30년 경력을 채우는 음악인 조관우의 이력을 조명하고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행보와 관점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극적인 가정사, 범국민적 히트곡 「늪」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곳에서 노출했기에 제외하도록 한다.

조관우 ⓒ투데이신문
조관우 ⓒ투데이신문

▶ 연기 활동

Q. 음악인으로 알고 있던 조관우 씨가 연기한다는 소식에 놀라웠다. 다른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나도 마찬가지로 놀랍다.(웃음) JTBC 개국 때 시트콤 제의가 왔었다. 처음엔 두려워서 안 한다고 했는데, 김석윤 감독이《나가수》를 봤을 때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다고 하더라. 계속 제의가 와서 결국, 술 한 잔하며 오랜 얘기 끝에 수락했다. 나중에 감독이 “조관우를 섭외한 게 신의 한 수였다”라고 칭찬해줘서 고마웠다. 곧 시나리오를 쓸 거 같은데 거기에 생각해 둔 배역이 있다고 하더라. 그게 영화《조선명탐정》이었던 거 같다.”

Q. 《조선명탐정》, 《그것만이 내 세상》을 봤을 때 배우 조관우가 출연한다는 사실을 모르다가 나중에야 알았을 정도로 연기가 자연스러웠다. 연기 공부를 따로 한 건가?

“따로 했다고 볼 수 없다. 시행착오는 많았다. 처음에 내 연기를 보니 너무 어색하더라. 무대에 있을 땐 조관우답게 해야 하지만, 연기에선 그 조관우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술 한잔하고 거울을 보며 생각하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면 기존의 조관우다운 모습을 버려야 한다는 거 말이다. 그리고 선배로서 배우 정보석 씨의 가르침과 격려는 특히 큰 힘이 됐다.”

Q. 《어사와 조이》에서도 캐릭터가 독특하다.

“그 드라마가 퓨전사극에다가 코믹 장르여서 위엄 있는 임금을 연기하는 건 기존 배우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Q. 그럼 해당 캐릭터는 스스로 만든 건가?

“그렇다. 그래서 감독이 걱정이 많았는데, 그냥 밀고 나갔다. 나중에 보니 색다른 임금 캐릭터가 돼 있더라. 결국엔, 연출자가 나쁘게 보지 않아서 계속하게 됐다.”

Q. 차기작도 준비돼 있는지?

“있는데 생각 중이다. 단막극 모음 형식으로 살인마를 다루는 내용이다. 한 가지 걱정인 건 《조선명탐정》 때 해당 캐릭터에서 3개월 동안 벗어날 수 없었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이다.”

Q. 캐릭터 몰입이 강해서 현실로 회귀하기 어려운 편인가?

“나도 그럴 줄 몰랐다. 전에는 연기자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하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되더라.”

조관우 ⓒ투데이신문

▶ 음악 활동

Q. 음악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물론 과거에도 팝페라(Popera)등의 색다른 시도가 있었지만, 최근 두 신곡 「엄마의 노래」와 「비가 오려나」도 이전에 비해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 이번엔 성인가요 형식이더라. 데뷔 때부터 알앤비 음악에 영향을 받아 그 장르를 추구하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좀 의아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도 많이 그러는데, 잘 들어보면 나는 조관우의 음악을 한 것이다. 단순 트로트를 한 게 아니라 알앤비 리듬을 섞거나 블루스(Blues) 감성을 담거나 한다. 그렇게 한다면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고 들을까?” 하고 의문을 던지는 식이다. 이런 게 조관우의 음악이다.”

Q. MBN 예능 프로그램 《보이스 킹》 출연 때 느꼈지만, 성인가요 형식이 꽤 잘 어울리고 목소리가 주는 감동도 있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형식의 신곡이 나와서 시기적으로 성인가요에 몰입하던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앞으로도 같은 형식의 음악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혹은 앞서 말한 ‘시도’에 의미를 두고 바라보는 게 옳은 지?

“시도로 보는 게 맞는 거 같다. 예전에 「연」이나 「유배」를 불렀을 때도 그랬다. 직접 가야금을 연주하기도 했다. 팝페라를 접목한 「후애」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쭉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새로운 버전, 새로운 창조의 희열을 느끼려고 한다.

사실, 《보이스 킹》 출연 때에는 하고 싶은 음악이 따로 있었다. 방송이라서 불가피하게 여러 환경적인 제약이 따르더라. 그러다 보니 내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됐다. 결국, ‘지더라도 웃고 깨끗하게 물러나자. 그래도 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 하는 생각에 곡 선정을 「먼지가 되어」로 했는데 실제로 먼지처럼 가버렸다.(웃음)”

Q. 거기서 「어매」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악풍은 원래 나와 친숙하다. 국악 집안이라서 말이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한스러운 느낌이 담겨 있어 많은 사랑은 받은 듯하다. 그런데 나훈아 선배의 곡을 하다 보니 남진 선배에게 괜스레 미안해지더라. 그래서 「모르리」를 이어서 부르게 됐다.“

조관우 ⓒ뉴시스

▶ 리마인드

Q.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스타일리스틱스(The Stylistics)의 러셀 톰킨스(Russell Allen Thompkins, Jr.)나 비지스(Bee Gees)의 배리 깁(Barry Gibb)등이 떠올랐다. 소울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예전엔 비지스, 스타일리스틱스 같은 디스코(Disco), 소울만 들었다.”

Q. 최근에야 안 사실인데, 본명 ‘조광호’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과거 앨범이 있더라.

“나도 최근에 알았다.(웃음) 음반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오랜 팬이 직접 엘피(LP)를 선물했다. 덕분에 이번 신곡 「비가 오려나」 뮤직비디오에 간접 노출했다. 내가 26살 때 녹음하고 제작을 하긴 했는데, 그건 사실 발매를 안 한 앨범이다. 공식 음반이 아닌 셈이다. 잊고 있었는데 팬들이 찾아냈다. 정말 말 그대로 희귀 음반이다. 다시 그 음반을 살려볼까 생각도 해봤다.”

Q. 「아흔아홉 날의 홀로 사랑」이라는 트랙이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다. 특히 과거 스타일리스틱스의 음악이 떠오르는 창법과 분위기 말이다.

“일단 그걸 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방금 얘기했지만, 공식 음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흔아홉 날의 홀로 사랑」은 나도 애착이 있는 곡이다. 그건 고등학교 때 쓴 곡이다. 변조가 많은 곡인데, 당시 작곡가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식으로 만들었느냐 묻더라.”

Q. 당시에도 팔세토가 인상적이다. 그 창법은 언제 완성한 건가?

“19살 때부터 입대 전까지 그룹사운드에서 활동했는데, 그때 구성원이 국내에서 손꼽는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소울, 훵크(Funk)를 하는 밴드를 찾기 어려웠는데 내가 속한 밴드는 그런 음악을 했다. 흑인음악 특유의 애드리브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다. 당시 맨해튼즈(The Manhattans)의 「Kiss And Say Goodbye」나 「Shining Star」, 스티비원더(Stevie Wonder)의 「Master Blaster (Jammin’)」같은 곡들만 불렀다. 그때 활동하면서 배우고 익히게 됐다.

나는 원래 진성이 약하다. 제대 후에 들어간 밴드에서 같이 활동하던 ‘최호섭’이란 보컬리스트가 있었는데, 그는 가창력이 좋고 고음을 시원하게 낸다. 차별성을 두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힘을 뺀 창법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티비 원더를 필두로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제럴드 졸링(Gerald Joling)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산에 자주 올라가서 목을 다듬기도 했다. 당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illie Jean」, 제럴드 졸링의「Hearts On Fire」 등을 부를 때 주변에서 똑같다고 칭찬하더라. 생각해보면, 음반 내기 전에 목 상태가 가장 좋았던 거 같다.”

Q. 과거에 해외 공연도 성공리에 진행한 거로 알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팝핀현준과 함께 공연할 때 하와이, 뉴욕,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거주하는 교포가 많이 방문했다. 내 무대 건너편에는 셀린 디온(Celine Dion)의 공연이 있었고, 나 다음으로는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가 대기 중이었다. 그런 유명한 음악인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영광스러웠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라이브 연주가 아니었다는 거다. 당시 MR 위에 노래했는데, 공연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에게 진짜 보여줄 수 있는 걸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더라.”

Q. 목 상태가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해외 공연을 진행한 바 있다고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랑과 평화’와 함께 공연하던 때였다. 큰 규모의 무대였는데, 일주일 전에 알 켈리(R. Kelly)가 공연했던 곳이라고 들었다. 당시 소리가 잘 안 나왔다. 다음 LA 공연 땐 샌프란시스코 공연과 비교할 바 안 되는 엄청난 인파가 몰리더라. 그래서 노래할 때 가성이 깨끗하게 안 나오더라도 굉장히 노력했다. 당시 아들 조휘도 함께 빌리 조엘(Billy Joel)의 「My Life」를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다. 관객들이 울다가, 웃다가 호응을 잘해주시더라. 그때 무대에서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아 미안한 마음에 관객들에게 목 상태가 안 좋아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성원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서 수술하겠다고 약속했다. 돌아와서 실제로 그 약속을 이행했는데 수술 후에 목소리가 소프라노에서 메조소프라노로 변했다.”

Q. 개인적으로 초창기에 들려줬던 음악을 상당히 인상적으로 들었다. 당시 제작자 하광훈 씨가 동시대에 본토인 미국에서 유행하던 베이비페이스(Babyface)식 작법으로 곡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3집 『My 3rd Story About...』(1996)에서 샘 리(Sam Lee)가 참여한 「너의 흔적」도 참 세련된 곡이다. 앨범 발매 이력을 보면 4집 『Waiting...』(1997)에서부터 기존의 알앤비 지배적 앨범 분위기가 점차 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5집 『실락원』(1999)부터는 대부분 발라드를 담았다.

“인터뷰를 하면서 「너의 흔적」을 짚어준 건 처음이다.(웃음) 예전에 누군가 내 음악을 부대찌개와 같다고 하긴 했다. 직접 제작한 4집 앨범에서도 알앤비 느낌을 담은 곡을 찾을 수 있긴 하다. 4집은 미국에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마이클 톰슨(Michael Thompson)과 실제로 같이 작업했다. 수록곡 「ID Date」는 그들이 직접 작업 중에 칭찬한 곡이다. 호흡이나 리듬이 그들이 하던 거와 비슷하다고 하더라. 알앤비를 손에서 놓을 순 없을 거 같다. 어릴 적부터 소울 음악을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앤비로 가득한 앨범 작업을 다시 하고 싶기도 하다.”

Q. 최근 CBS 라디오에서 라이브로 노래하는 걸 청취하며 목소리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성대 관리에 어떤 노하우가 있는가?

“실력이 여전하지 못하다. 치료 잘 받고 관리해서 나중에 좋은 알앤비 음악을 꼭 해보겠다.”

정휴 음악칼럼니스트와 인터뷰 중인 조관우 ⓒ투데이신문

▶아들에 관하여

Q. 《보이스 킹》에 나왔던 음악을 비롯해 최근 작품에는 두 아들과 함께 작업하는 거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작업하다 보면 여러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비가 오려나」 가사를 통해 자식을 향한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애로사항은 있었을 거 같다.

“아들은 감독이고 나는 배우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긴 하다. 작업할 때 보면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게다가 양보를 안 한다. 어떤 부분에서 살짝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도중에 바람 쐬러 나갔다가 감정을 다스리고 돌아온다.(웃음) 나중에야 본인 생각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알고 보면 나를 만만하게 보는 거인지도 모르겠다.(웃음)”

Q. 첫째 아들 조휘 군의 목소리가 참 좋다. 솔로 활동의 가능성은?

“휘의 발성이 특히 알앤비에 어울린다. 젊은 감각으로 노래를 잘한다. 종종 신곡 가이드를 해줄 때 어떻게 노래하는지 내가 참고하기까지 한다. 작년에 이미 곡을 하나 발표했었다. 활동을 기대할 만하다.”

Q. 최근에는 복고풍의 감성과 최신 작법, 즉 올드 소프트웨어와 최신 하드웨어가 교차하는 멋진 현대적 소울 음악이 있지 않은가? 잘 어울릴 거 같다. 최근 활동하는 아티스트와 멋진 콜라보도 나올 수 있을 듯하다. 요즘 주목하는 젊은 음악인이 있는가? 같이 협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들과 같이하고 싶다. 우선 아들은 나에 대해 잘 안다. 현(둘째 아들 ‘조현’)에게는 음악의 깊이를 배운다. 나는 루서 밴드로스(Luther Vandross)나 제임스 잉그램(James Ingram) 같은, 혹은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가 주로 선보이던 점잖은 스탠다드 소울 음악을 하고 싶다.”

Q. 조현 군이 최근에 입대해서 작업이 더디게 갈 수도 있겠다.

“군에 가기 전에 같이 작업한 곡이 있긴 하다. 방금 얘기했던 스타일의 곡이다. 큰 아들을 위해 직접 작업한 곡도 있다. 활동 초창기에 선보였던 ‘90년대풍의 알앤비 음악이다.”

조관우 ⓒ투데이신문

▶관점과 바람

Q.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 활동을 하면서 유흥업소 무대를 거부했다고 하던데, 언더그라운드 역시 유흥업소 활동이 아닌가. 둘의 차이가 있었나? 어떤 철학과 기준이 있었는지?

“앨범을 내면서 오디오형 가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얼굴 팔리면 리어카도 못 끈다”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음악인으로서 언더그라운드 활동이 더 존중받던 때였던 거 같다. 호텔 클럽에서 TV 유명 가수가 나온다고 해도 사람들이 크게 신경을 안 썼지만, ‘검은 나비’나 ‘히 파이브’가 등장하면 집중하더라. 그런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 당시엔 앨범이 많이 팔리기도 했고, 경제적인 걱정보다도 음악인으로서의 존중이 더 중요했다. 가치 있게 무대에 서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철모르는 시절 얘기이기도 하다. 가장 어려운 시기일 때 택한 곳이 결국은 업소이다 보니 말이다. 그래도 그런 생각 덕분에 대중가수로서 예술의 전당이라는 무대에 최초로 서게 된 거 같다. 내 다짐이 실현되긴 하더라.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음악이 업소용도 아니다. 뜨는 곡이 다 느린 곡이니 말이다.”

Q.「실락원」, 「그가 그립다」, 「풍등」, 「평양에게」, 「유배」 등 당대 또는 과거의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은 음악을 종종 발표해왔다.

“몇 경우에는 금지가 되기도 했다. 「Angel Eyes」처럼 현재 화두에 올라도 어색하지 않은 동성애를 앞서 짚기도 했다. 항상 사회적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운다기보다는, 단순히 세월호 참사나 성수대교 붕괴 사건 등 가슴 아팠던 일에 대해 잊지 말자는 순수 의도에서인데 오해와 왜곡이 있어서 속상할 때가 있다.”

Q. 근 30주년을 바라보는 음악인 조관우가 바라보는 목표가 있는가? 대중은 본인을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하길 바라는지?

“항상 받는 질문이면서 늘 어렵다.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살펴보고 연구할 수 있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 그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어떤 음악을 했는지 말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이력을 조명하는 순간에는 들뜬 마음을 표출하며 폭넓은 음악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화를 잇기도 하고, 아들에 관한 이야기에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행보를 먼저 걷고 있는 음악인으로서 애정을 숨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보여줄 새로운 음악인 조관우의 모습이 기대가 되는 건, 과거 등장부터 강렬했고, 독보적인 존재로서 ‘현재 진행형’이자, 지금도 열정으로 탐구하고 추구하는 모습을 자명하게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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