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이해는 문제 없지만 발음하는 데 어려움 겪어
카페서 혼자 음료 한잔 사 먹는 일조차 쉽지 않아
교정·재활치료 공급 적은데 수요 많아 대기만 3년
의사소통 돕는 기계 상용화되는 날 빨기 오길 기대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라고 평가된다. ‘나’만큼이나 ‘우리’가 중요한 사회 분위기 속에 집단에 들지 못하는 소수의 삶은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듯, 차별과 배제가 당연하게 뒤따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수집단 안에도 또 다른 소수는 존재한다. ‘소수장애인’도 그중 한 집단이다. 대표적인 소수장애인인 신장장애, 심장장애, 간장애, 호흡기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 등 내부기관장애인과 더불어 언어장애, 안면장애 등 소수장애인은 전체 장애 인구의 10%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장애대중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각종 복지정책으로부터 역차별을 당할 뿐만 아니라 장애를 장애로 봐주지 않는 또 다른 편견과 무관심 속에 살아간다.

본보는 장애 대중과는 또 다른 소수장애인의 일상적 어려움을 시작으로 사회적 편견, 정책 차별 등을 조명해 보는 [소외된 이들, 소수장애인]을 기획했다. 소수장애인들의 삶을 통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우리 사회의 ‘차별 속 차별’의 실상을 들여다보자. 

언어장애 이규식씨 ⓒ투데이신문
언어장애 이규식씨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말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방법이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다시 잠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일을 하거나, 친구를 만날 때, 물건을 살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혼자서도 중얼중얼 끊임없이 말을 내뱉는다. 

어쩌다 목이 아파 말할 수 없는 땐 소위 복장이 터질 정도의 답답함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온다. 그만큼 말을 뺀 인간의 삶은 가히 상상조차 어렵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이규식(53)씨는 한평생 살아오고 있다. 언어장애가 있는 규식씨는 말 뜻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 없지만 발음하고 내뱉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식당에서 밥을 시켜먹거나, 추운 겨울날 카페에 들어가 차 한잔 시키는 등의 평범한 일상이 주문조차 쉽지 않은 그에게는 하루하루 도전이다.

특히나 장애인 인권운동가로서 사람들 앞에 서 마이크를 잡고, 각종 토론이나 의견을 공유해야 할 일이 많은 규식씨에게 언어장애는 중증장애로 인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몸만큼이나 무거운 존재다. 

ⓒ이규식씨
이규식씨 <사진 제공 = 이규식씨 >

언어장애가 불러온 단절

규식씨는 선천적 뇌성마비로 언어장애를 갖게 됐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했을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 가스에 중독됐다. 그 때문에 이규식씨는 태어났을 때부터 뇌성마비 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뇌성마비는 미성숙한 뇌의 손상으로 인해 주로 자세와 운동의 이상이 생기는 질환이지만 언어장애, 정신지체, 학습 장애, 경련, 감각 장애와 같은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규식씨는 언어장애를 동반한 경우다. 언어장애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언어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결함이 있는 것을 뜻한다. 장애의 원인과 정도에 따라 발음의 어려움, 의미 이해 및 발음의 어려움 등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단순히 ‘말을 못하는 장애’라고만 정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규식씨의 경우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발음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다.

규식씨는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방안에서만 보냈다. 몸을 쓰는 덴 불편했지만 서툴게 말해도 가족이기에 규식씨의 마음이나 생각을 대번 읽어내는 가족들 덕분에 집에서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그가 하는 일은 먹고 자는 일 뿐이었지만 이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기에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가 8살이 되던 해 부모님께선 다른 형제들의 교육을 위해 원래 살던 경북 함양에서 서울 마천동으로 집을 옮겼다. 가족들의 삶에는 변화가 있었을지언정 그의 일상은 이전과 다를 거 없었다.

입학해야 할 나이가 됐지만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건 고사하고, 친구 한명 없어 그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식구들과의 대화가 전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규식씨가 15살이 되던 해 신문배달을 하던 형이 ‘삼육재활원’이 소개된 전단지를 보고 어머니에게 건넸고,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그곳에 도움을 요청했다. 재활원에서는 규식씨의 집으로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보내줬다.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규식씨는 한글을 깨우쳤다.

20세 이후 그는 시설을 옮겨 다니며 공동체 생활을 했다. 28세 무렵에 생활했던 시설에서 그는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스쿠터를 구입했고 덕분에 혼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

자유를 얻게 된 그는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삶보다는 의미 있게 여기저기를 누벼야 겠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그리고 규식씨는 이듬해 노들야학에 입해 공부를 시작했고 장애인운동 활동가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활동가가 된 그는 이전보다 바깥 활동을 많이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밖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예컨대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카페에서 음료를 사먹는 일이 잦아졌다.

규식씨는 글을 배웠기 때문에 눈으로 읽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눈으로 본 그대로 밖으로 소리 내 읽는 건 어렵다. 어려움 정도를 표현하자면 그가 스스로 진단한 언어소통 가능 수준은 10점 중 5점이다.

여러 차례 온 힘을 다해 말을 해야 그나마 상대방이 이해할 정도가 되다 보니 먹고 싶은 음식 하나 사먹는 일도 그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말하는 것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활동지원사가 있잖아요,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혼자 다녔어요. 예를 들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달라고 했는데 주스가 나오는 거에요. 잘못 나왔다 그러면 제가 주스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식당엘 가도 나는 김밥을 시켰는데 라면이 나와요. 그런 일이 많은 편이죠.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어요(웃음). 메뉴가 잘못 나와도 그냥 주는 대로 먹었어요. 그래도 요즘엔 활동지원사랑 함께 다니거나 다른 활동가들을 동행해서 가곤 해요.”

언어장애 이규식씨 ⓒ투데이신문

잘못 나온 메뉴를 바꿔 준다거나, 그대로 먹더라도 정중하게 사과하고 넘어가면 다행이지만 도리어 화를 내 큰 소리가 오갈 때도 있었다. 규식씨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오히려 주위에서 나서 경찰까지 부른 일도 있었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보니 대화가 힘들 때가 더욱 많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함께 해온 활동가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자리에선 어려움이 더욱 크다.

“마스크를 쓰면 내가 상대방 말을 듣는 덴 문제가 없지만, 상대방이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요. 방금 기자님이 제 말을 한번에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에요. 그나마 마스크를 벗고 대화하면 훨씬 나을 텐데 요즘 같으면 쉽지 않죠. 오늘처럼 인터뷰를 한다거나 생판 모르는 사람과 일을 할 때 정 안 된다 싶을 땐 불가피하게 저만이라도 마스크를 벗고 얘기할 때가 있어요.”

언어장애는 교정이나 재활치료를 받으면 현재 상태보다 좋아질 순 있겠지만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규식씨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대충대충 말했어요. 그래도 요즘은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버릇이 돼서 그런지 잘 안 고쳐지네요. 성격이 워낙 급해서 속 터질 것 같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교정이나 치료를 받았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질 수 있었겠죠. 그런데 나이가 있으니 쉽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복지원 같은데 그런 지원을 요청하면 3년 후에나 받을 수 있어요. 공급은 적은데 수요는 적으니 대기자가 많거든요.”

그나마 규식씨는 언어장애인 중에 정도가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말하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고, 여러 번 반복하는 과정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상대방과 대화는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저는 언어장애 정도가 나쁘지 않은 편에 속해요. 아예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이거나, 한글을 잘 몰라 대화가 어려운 분들도 많아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개선하기는 더 어렵죠. 언어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돕는 기계나 기술들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좀 더 빨리 상용화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가운데) 이규식 활동가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 페이스북
(가운데) 이규식 활동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

규식씨는 장애인 인권운동 활동가로 일하며 정말 다양한 장애인을 만난다. 거리에 나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싸우는 장애인 대부분은 장애 정도가 심한 중증장애인이다. 상대적으로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증 장애인은 찾아보기 드물다. 장애인이라고 차별 받는 건 중증이나 경증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규식씨는 주위의 경증 장애인에게 함께 목소리를 내자고, 부당함에 맞서자고 제안한다. 당사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0년대부터 중증장애인들이 사회적 차별이나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싸워왔고, 지금도 그 싸움을 이어가고 있죠.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가 가능했던 거예요. 주위에 몇몇분께 같이 나가자고 하면 안 나가요. 이유가 있겠지만, 나가서 싸워야 바뀐다는 걸 경험한 저로서는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요구하면 바뀌어요.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이 얘길 꼭 강조하고 싶어요.”

언어장애인들은 말이 느리고 정확하지 않다 보니 흔히들 지적장애를 동반한다고 오해한다. 대부분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러한 편견이 언어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가로막고 있다. 

식사를 할 때 누군가는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사용한다. 또 포크를 사용하기도 하고, 도구 없이 손을 이용해 먹기도 한다. 각자 편한 방식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말도 마찬가지다. 대화는 말뿐만 아니라 수어, 글쓰기, 몸짓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말은 그저 대화의 수단 중 하나일 뿐, 그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깨우침은 우리 사회에의 더 많은 소통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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